광주에 사죄한 아들, 추징금 완납 나선 아내.. 노태우 가족은 달랐다

한국일보 김지현 입력 2021. 10. 27. 09:30 댓글 1185개

[노태우 별세, 남겨진 가족] 딸 소영씨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

 

노태우 전 대통령 가족은 전두환 전 대통령 가족과 달리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 등 과오를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김옥숙(86) 여사는 1959년 노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은 후 '그림자 내조'를 해왔다. 유일하게 어록이 없는 영부인으로 기억될 만큼 말수가 적은 편이다. 퇴임 후에는 연희동 자택에서 투병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 간호에 전념했다.

그나마 김 여사가 언론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돈과 친척에게 맡긴 비자금으로 미납 추징금을 납부하겠다"면서 2013년 6월 대검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했을 때였다. 김 여사는 "추징금 완납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의미를 넘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역사에 대한 빚을 청산하는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돌려받을 수 없는 차명재산을 국고로 환수해 추징금 미납 족쇄를 풀려는 계산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해 말 추징금 2,397억 원을 완납했다.

아들 재헌(56)씨는 최근 부친의 과오를 사과하기 위해 자주 광주를 찾았다. 2019년 8월 23일 희생자들이 안치된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한 뒤 사죄의 뜻을 밝혔다. 같은 해 12월과 지난해 5월, 올해 4월 등 총 4차례 참배를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투병 생활로 거동이 어려운 노 전 대통령이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부친을 대신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린다'는 글을 남겼다. 김 여사도 1988년 2월 25일 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지와 이한열 열사의 묘를 찾아 참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재헌씨는 지난해 7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짐을 벗기 어려웠다"며 "(피해자와 유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으로 정치인을 꿈꿨으나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탈당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현재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딸 소영(60)씨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결혼했으나 현재 이혼 소송 중이다. 소영씨는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맡고 있다. 소영씨의 차녀로 노 전 대통령 외손녀인 최민정(30)씨는 2014년 해군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해 청해부대 근무 등을 마친 뒤 2017년 예비역 중위로 전역했다. 최씨는 현재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옥숙 여사, 아들 재헌씨와 함께 바둑을 두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https://news.v.daum.net/v/20211027093002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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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05.20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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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1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30 한기 *
5월 그날이 다시 오기를 40번
그날 아스팔트에 쓰러진 동료들
1981년 첫해 추모제의 비통했던 기억
또 가슴이 멍멍해진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29 이 *
1980년 5월 17일, 종로에는 술취한듯한 군인들이 수 많은 트럭을 타고 군가를 부르며 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광주로 가는 군인들로 짐작 됩니다. 그후에 미국에 살며 한국을 그리며 광주사태에 막말을 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40년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전두환과 그 잔당을 처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을까요?
28 양세 *
5.18 민주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역적 살인마 전두환과 그 패거리들의 최후를 보는 그날까지 다함께 투쟁합시다. 살인마 전두환을 척결합시다. !!!
27 나민 *
저는 5월 26일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는 병원에서 저를 못 나으시고 3일 고생하시어 저를 집에서 낳으셨지요. 5.18은 저에게 있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당시를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지 못했지만 5월에 광주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이유만으로 꼬리표 처럼 저를 따라 다녔지요. 그분들이 목숨걸며 지키고 싶었던 민주화 국민들이 가져야 하는 권리를 갖을 수 있었던 그분들의 선혈...제가 죽을때까지 기억하겠습니다. 그분들의 목숨과 맞바꾼 저의 행복한 삶 깊이 새기며 간직하겠습니다. 제 자식들에게도 잊지 않도록 이역사를 알려주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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