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사)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창립 경과보고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창립경과 보고 1995년 5월 18일 결성된 “5.18민중항쟁 서울경기동지회”로부터 출발한 5.18서울기념사업회는 비록 임의단체였지만 2002년부터 회원들의 자발적 노력과 헌신으로 5.18민주화운동 국가기념일에 맞춰 서울기념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월 서울시에 단체등록을 한 이후부터는 기념식과 함께 5.18 정신을 계승, 발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학생 백일장과 사생대회, 전시회, 골든벨 등의 부대행사를 병행해 왔습니다.

 

이렇게 15년 동안 회원들의 회비와 자원봉사 등으로 어렵게 회의 활동을 이어오던 중 지난해 11월 22일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이신 박양숙 의원님께서 4.19혁명 유공자와 5.18유공자, 특수임무 유공자에 대해서도 보훈예우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서울특별시 국가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해주셨고 개정안은 같은 해 12월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서울시에서도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가 서울시 산하 법인으로 등록할 경우 다른 보훈단체에 준해 사무공간을 지원해주시기로 하고 예산을 편성해 주셨습니다.

 

서울특별시와 시의회의 이런 지원과 노력에 발맞춰 저희 5.18서울기념사업회도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을 보다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해 법인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으고 2017년 1월 (가칭)사단법인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시와의 긴밀한 협의 아래 오늘까지 10차에 걸쳐 회의를 열면서 준비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사단법인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는 지난 6월 9일 법인 창립총회일을 7월8일로, 발기인을 최병진, 장신환, 최수동, 정찬우, 최영선, 김명자, 김청식 등 7인으로 확정하고 정관(안)과 사업계획(안) 작성에 착수하는 한편, 국가보훈처 서울지방청 관내에 거주하는 5.18민주유공자 880여명 모두에게 사단법인 설립취지서와 회원 가입신청서를 발송하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가입을 독려하였습니다. 지난 6월 12일 사단법인 설립취지서와 가입신청서을 우편 발송한 이후 우편, 팩스, 전자가입서 등을 통해 회원가입신청을 받은 결과, 오늘 현재까지 5.18민주유공자등예우에관한법률 제4조에 의한 유공자 즉 정회원 231명, 법에 따른 유공자는 아니지만 본 회의 목적과 취지에 찬성하여 가입신청을 한 후원회원 49명 등 총 279명이 회원으로 가입, 오늘 설립 총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사단법인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가 설립되기에 이르기까지 말없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도와주시고 헌신해주신 많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동지 여러분들과 박원순 서울특별시장님과 박양숙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이것으로 경과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사)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발기인 대표 최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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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글 모음

5・18 추모의 글

순서 성명 추모의 글
154 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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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ㄱㅅ *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152 이영 * 기억하겠습니다.
151 ㄱㅈ * 희생당한 시민분들이 정말 멋지네요
150 강태 * 5.18 그날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149 나만 *
중학교 1학년 막 입학한 후였다.
갑자기 학교 등교하지 말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는 학교 안가니 무조건 좋았다.
먼 거리 비포장 자갈길을 자전거로 통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광주에 폭동이 일었다고 들었다.

518이 끝나고 난 후 분실한 총기를 찾는다며 수업을 매번 빠뜨리고 전교생이 동원되어
강변 갈대 숲을 뒤지면서 총기를 찾아다녔다.
얼마 후 시내 남녀 중고등학생들 모두를 동원하여 대로변 양옆에 도열하게 한 후 검은 차가 지나가면 손을 열렬히 흔들라고 교육을 받았다.
한참 후 검은 차 몇대가 지나가는데 우리는 북한 보신박수 수준과 열광적인 환영식을 강요받았다.
어린 마음에도 더럽게 기분이 나빴다.
3년 후 광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입학하자 마자 최루가스로 범벅이 된 대학 정문을 지나 학교를 드나들었다.
전경들이 대학 내로 진입하여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끌고가던 시절이었다.
대자보를 열심히 읽었다.
뭔가 이 사회가 정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어렴풋이, 1년이 지나자 518때 공수부대의 학살 장면, 당시 폭도라던 시민들 사이에 한 건의 절도사건도 없었음을 일상적으로 사진으로, 그리고 몰래 돌려보는 518 항쟁 관련 유인물들과 대자보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때 정말 이 나라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두환은 반성과 사과 한 번 없이 7년 내내 기세등등했다.
518기념일이 되면 망월동 입구에서 전경들이 닭장차를 대기시키고 무조건 체포하여 버스에 실어 교통수단이 없는 먼 오지에 버려두곤 했다. 그걸 피하기 위해 3KM여 정도를 더 우회하여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학년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하모니커를 불었는데 당일 시위한걸 깜박하고 하모니커를 연주하면서 길게 들이마신 후 일주일동안 목에서 피가래가 계속 나와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일주일 계속된 피가래 증상 이후 지금까지 30년이 넘게 건조한 계절이나 여름에 에어컨을 틀면 물병을 들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래 들려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다시 오늘 518을 맞는다.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정치검사와 그의 졸개들이 이제 국민 여론은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법도 무시하면서 노골적으로 법위에 군림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어제 윤석열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만들어 엄단하겠다고 했다.
야 윤석열 이 더러운 정치검사야,
네 마누라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 이따위로 뭉개면서 또 제2의 채널A사건 만들어 유시민 같은 정적 제거하려고 기도하고 있나?
이런 더러운 놈들이 공정과 상식과 법과 원칙을 입에 올리는 이 참담한 현실,
절대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
제주의 4.3도 419 혁명도 80년 광주항쟁도,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여전히 완성되지 못하였다.
이번 봄에는 멀어도 광주에 꼭 다녀와야겠다.
들리는 길에 노무현 대통령님의 고향도 꼭 들러봐야겠다.

148 이문 *
잊지 않겠습니다! 책임자 처벌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과 그 가족들 위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합니다!
147 나현 *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임을 위한 행진곡~함께
146 김석 * 그날을 잊지않으며 오늘의 태양과 하늘에 태그기가 펄락일수 있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가합니다.
145 양 *

43여년의 기나긴 모진 비바람 속에도 영원히 가슴에 영롱한 의로움의 넋은 계승되고 온전한 믿음의 계승으로 살아 새롭게 만나게 됩니다.
불상히 여기신 먼저가신 선대분들의 민주화운동을 잊지 않고 기억한 한분 한분의 사랑 감사와 경외를 드립니다.
삼가 하늘의 영면은 살아 있는 한분 한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영원한 사랑 입니다.
다시 기억한 민주화의 법:유신독재자 재산환수법+군부독재자 재산환수법+친일혈족의재산환수법= '통합적 국가적 야만의 폭언폭력의 학대자들의 재산 환수법''다르면다를수록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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